「감히 나를 구원한 뒤 영영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버린 이에게.」 에우릴데 필로시, 그녀는 어릴 적 자신을 구원해준 남자의 얼굴과 이름을, 그 후로 단 한번도 그를 만나지 못했음에도 결코 잊지 않았다. 오직 그의 존재만이 그녀가 살아있는 이유의 전부이자 목적이었다. 뷔에드 크론델, 그는 홀로 남은 가족인 여동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에우릴데를 택했다. 에우릴데는 뷔에드에게 완전한 신뢰를 심어줄 수 없었다. 뷔에드는 에우릴데를 원하면서도 의심했고, 믿고 싶었기에 붙잡아두려 했다. 그리고 실패했다. ‘네가 감히 자유를 바라선 안 되지.’ 제 기도에 칼을 들이댄 가짜 신, 에덴 필로시를 목전에 두고서도 에우릴데는 그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정말 날 배신하려는 거야? 에우릴데.’ 살을 가르는 고통보다도 그 무너질 듯하던 표정이 더 아프게 느껴지니, 이렇듯 사랑이란 얼마나 부조리하며 또 얼마나 주제넘는 짓이던가. 하지만 괜찮다. 이번엔 내가 그대를 지킬테니. 나의 치부가 낳은 죄이자 비극, 나 홀로 떠안고 추락하면 그만이었다. 그대의 미소를 지키기 위한 대가라면, 그것이 지옥불일지라도 기꺼이 손을 뻗으리 * * * 세상이 정체 모를 괴물에게 집어 삼켜지고 수년 뒤, 뷔에드 크론델이 가질 수 있었던 마지막 희망은 모순적이게도 죽은 자의 혼을 모독하는 사령술사 에우릴데 필로시였다. ‘그 여자를 어디까지 용납할 생각입니까?’ 스스로도 제 감정이 불합리하단 것은 잘 알았다. ‘뷔에드, 나를 의심해. 내게 자유를 맛보게 하지 마. 더 이상 원하게 만들지 말아줘.’ 하지만 눈부시게 빛나던 그 감옥에서 함부로 널 빼내온 그 날부터, ‘우리’의 추락은 이미 시작되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살고 싶다고 내게 빌어, 에우릴데.’ 남자는 자신이 해야 할 기도를 제 심장을 난도질한 악마에게 했다. * 동시연재중 * 메일 hon_2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