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재계약의 조건은 임신이었다. “살려주세요, 도헌 씨.” 지옥 같은 시집살이에서 벗어나 살기 위해 그와 도망치듯 이혼했는데. 인아는 집안을 살리기 위해 다시 그의 앞에 섰다. “기껏 살려줬더니, 살려준 보람 없이 제 발로 기어왔어.” 짜증스럽게 그 말을 뇌까리던 도헌은 혀를 찼다. “도헌 씨의 도움이 필요해요. 뭐든지 다 할게요.” “내가 뭘 요구할 줄 알고.” “뭐든, 원하시는 거 다 할게요.” 절실했기에, 인아는 그에게 사정했다. 곧 그가 허리를 굽혀 그녀의 뺨을 문질렀다. “재계약 조건은 임신이야.” 도헌은 그녀의 눈동자에 제 눈빛을 직선으로 박아 넣었다. 하지만 몸은 섞어도 마음은 절대 섞지 말라며, 남편은 조건을 걸었다. 남편은 끝까지 무정했다. “대신 아이를 낳으면 아이의 엄마로만 살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녀가 정말 임신하자 좋을 대로 하라, 조소하던 남편의 눈빛이 돌변했다. “나에게 기회를 줘, 인아야. 내 아내로 살아줘.” 천하의 구도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떠나려는 인아의 앞을 가로막고 선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