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언니 쪽으로 간 혼담이에요.” “그럼 잠은 너랑 자고, 결혼은 네 언니랑 할까.” 삶이 척박해 일탈한 그 날, 우연히 만난 남자가 언니와 정략혼을 맺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 했다. “난 언니랑...태생부터 달라요. 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간다고. 그러니 그만 해요.” 엄마의 목숨줄을 쥐고 있는 조부에게 그림을 그려줘야만 하는 사생아 신세. 자신은 정통 핏줄을 물려받은 언니와는 뼛속부터 다른 존재였다. “왜 못 나갑니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인데. 내가 알려줘요?” 그러나 그는 그녀의 삶을 전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막무가내로 제 반만 한 그녀의 손을 잡아 마디마디 그물처럼 얽어 깍지 끼곤, 그녀를 바짝 끌어당겼다. “이서혜 씨 식구들한테 한번 보여주는 건 어때요.” 워낙 명예를 중시하는 집안들이니. “이서혜 씨가 내 밑에서 우는 모습. 환장하게 예쁘던데.” 더러운 소문이 나면 내게 당신을 던져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