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 루카스 에르델하르트는 아이를 입양하면서도 한 번도 아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가 데려온 고아는 조금만 움직여도 피를 토하는 아이, 이리엔 로웰. 몸이 너무 약해 하루를 넘길 수 있을지조차 확신할 수 없는 아이였다. 동정도, 애정도 없었다. 루카스는 단지 “죽어가는 아이를 성에 두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관심을 주지 않아도 괜찮았다. 애초에 오래 살 아이가 아니라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매일같이 갈아야 하는 피 묻은 손수건, 새벽마다 들려오는 숨 막힌 기침 소리, 그리고 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채 조용히 버티는 작은 존재는 조금씩 공작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아이가 쓰러질까 두려워 걸음을 늦추게 된 순간, 약을 제때 먹었는지 확인하게 된 순간, “괜찮아요”라는 거짓말에 화가 치밀어 오른 순간부터. 처음엔 관심이 아니었다. 그다음엔 책임이었고, 그 끝에는 분명히 사랑이 있었다. 사랑을 주지 않으려 했던 공작과 사랑을 기대하지 않았던 아이의 이야기. 차갑게 시작해, 느리게 스며들고, 결국 서로를 살게 만드는 부녀 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