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은 사랑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는, 사랑이 사람을 얼마나 쉽게 망가뜨리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분석하는 일을 업으로 삼은 여자, 한서연. 감정은 계산할 수 없기에 위험하고,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한 발짝 떨어진 거리에서만 사람을 바라본다. 그런 그녀 앞에 나타난 남자, 윤도현. 무심하고 조용한 태도, 필요 이상의 말을 하지 않는 그 남자는 이상하게도 서연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위로도, 동정도, 구원도. 그저 같은 공간에 머무를 뿐인데 서연은 점점 그 남자의 ‘부재 같은 존재감’을 의식하게 된다. 사랑하지 않기로 한 여자와 사랑을 말하지 않는 남자. 이 관계에는 고백도, 계약도, 운명도 없다. 다만 아주 느리게, 서로의 일상 속으로 스며드는 시간만이 있을 뿐. 사랑이 시작되기 전, 아무도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지 않았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