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한 소녀는 무리했다 싶으면 피를 토하는 여주인공의 몸에 빙의했다. 문제는 이곳이 그녀가 읽었던 피폐 로맨스 소설 속 세계라는 것.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 몸의 주인공이 원작에서 철저히 미움받다 끝내 죽임당한 인물이라는 사실이었다. 원작 속 그녀는 황태자 라에른 폰 에델하르트를 집요하게 몰아붙였고, 마탑주 칼릭스 아르젠트의 금기를 건드렸으며, 북부 공작 이시도르 블랙우드의 인내를 끝장냈다. 결국 세 남자는 그녀를 증오했고, 서로 다른 이유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그녀는 살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다르다. 그들을 괴롭힐 생각도, 사랑받고 싶은 욕심도 없다. 그저 피를 토하지 않고, 죽지 않고, 조용히 살아남고 싶을 뿐이다. 문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할수록, 세 남자의 시선이 점점 그녀에게 얽혀온다는 것. “당신은 예전과 다르군요.” “그렇게까지 버티는 이유가 뭡니까?” “이번엔… 도망치지 않는 겁니까.” 황태자는 의심하고, 마탑주는 관찰하며, 공작은 침묵 속에서 거리를 재고 있다. 원작의 비극적인 엔딩을 피하기 위해 그녀는 오늘도 숨을 고른다. 피를 토하면서도, 아직은— 살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