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부였을 때 하지 못했던 걸 하는 것뿐이야.” 삼 년 전 헤어진 전남편을 갑과 을의 관계로 만났다. 그런데 더 비참한 건 초라한 모습으로 어떻게든 그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 “우리 한때는 부부였잖아요. 그러니까 한 번만…….” 결국 하고 싶지 않았던 말까지 해버렸다. 먼저 이혼을 꺼낸 전 자신이었으면서, 급박한 상황에 자존심까지 버렸다. “그 물건 받아주는 조건으로 뭐든 할 수 있다?” 처절한 제 상황을 외면하고 싶은 인영와 달리 그는 인영이 당황하는 걸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인영은 머뭇거리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절박했다. 계산하고 따질 여유 따윈 없었다. “이건 당신이 선택한 거야.” 귓가에 달큼하게 스며드는 그의 목소리는 그의 눈빛과 달리 지독하게 냉랭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날 원망하지 마.” *** “문인영. 남자 미치게 하는 재주 있지.” 인영의 깊어진 눈동자를 뚫어지게 응시하던 태하는 예쁜 눈웃음과 달리 날카롭고 비릿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지금처럼. 그런 눈빛으로 남자를 보면 어떤 남자든 문인영한테 정신이 나갈 거야. ” 그는 말을 내뱉으며 인영의 어깨에 있던 자신의 재킷을 훅 벗겨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널 안고 싶어 미쳐서.” 입술 안으로 뜨거운 숨결이 쏟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