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하연은 천재였다. ‘어려워서 재미있어 보이는’ 모든 학문에 흥미를 느꼈다. 특히, 물리학에.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고체 물리학 학위를 받은 그녀에게 쏟아진 수많은 러브콜. 학자로서의 삶이 전부인 그녀에게 연애는 시간 낭비, 결혼은 인생의 걸림돌이었다. “하연아. 미안하지만…… 결혼해야겠다.” “제가 왜요? 아버지, 저한테 왜 그렇게 끔찍한 짓을 시키시려는 거예요?” 아버지를 겁박하는 대기업의 혼맥 제안 따위 파투를 내 줄 생각이었다. “하연 씨가 우리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뿐이에요. 나와 결혼하는 것.” 하지만 상대는 천상 사업가, 마천루의 세계에서 걸어 나온 남자 한재준. 그는 하연에게 이혼을 조건으로 3년간의 결혼을 제안한다. 하연은 순진하게도 제게 퇴로가 없음을 선 자리에 나와서야 알았다. “나는 3년간 하연 씨의 두뇌를 알차게 임대할 생각입니다. 육체적 관계를 포함해서 말입니다.” 그 제안은 부드러운 말투에 감싸여 있었으나, 날강도 같은 말이었으며. “3년 후, 결혼을 후회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이혼 위로금을 지급하겠습니다.” “만약 3년 후 한재준 씨가 나와 이혼하려 들지 않으면?” “그때가 되면 오히려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은 건 하연 씨가 될 수도 있지만…….” 여유로운 말투가 오만하기 짝이 없었으나, 현 상황에서는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다. 이미 허리까지 진창이다. 그리고 진창에서 벗어날 방법은 그에게 손을 내미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