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동정하지 말아요.” ‘사람 함부로 동정하는 거 아니다. 가끔 어리석은 사람들은 그걸 사랑이라고 곧잘 착각하기도 해.’ 유일 그룹의 촉망받는 후계자, 공해일.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내뱉을 수 있을 만큼 숱하게 들어왔다. 착각하지 않을 자신 있었고, 그 누구를 동정도, 연민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눈이 벌게진 여자를 마주한 순간, 처음으로 흔들렸다. 흔들리자 무너지는 건 금방이었다. ‘부모 잃고 혼자가 된 불쌍한 아이야. 잘해줘라.’ 유일 그룹 공 회장 손에 거둬진 평생 불쌍할 아이, 차희주. 그 사람은 처음부터 동정심이라곤 조금도 모르는 눈빛이었다. 1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눈빛이 동정으로 변한 순간 희주는 울컥, 무너졌다. “나 동정하지 말아요.” 울음기가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로 여자가 노려봤다. 입에 물었던 담배에 불을 붙이려다 말고 손에 쥐며 남자는 시선을 느릿하게 올렸다. 원망 섞인 시선을 마주하며 그가 낮게 읊조렸다. “동정이 아니면 괜찮고?” 그게 사랑인 줄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찾아오기 전까지는. 툭. 가는 어깨에서 가방이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했다. 해일의 시선이 배로 향했고, 희주는 들키고 싶지 않다는 듯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