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없었던 걸로 해.” 뉴스 말고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 없던 WBC 보도국 대표 앵커, 주해원. “회사에서도 네가 받은 조건보다 더 나은 대우 해줄 거야. 네 몸값 올리기에는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해.” 무감한 목소리에 세이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선배 눈에는 제가 겨우 몸값이나 올리자고 이러는 것처럼 보여요?” 미모면 미모, 지성이면 지성, 능력까지 출중한 WBC 신입 아나운서, 윤세이. “선배가 그랬죠. 데스크에서 가장 중요한 게 파트너 호흡이라고.” “…….” “나 선배랑 이혼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파트너 호흡이 좋을 리가 없잖아요.” 자신도 모르게 그에게 기대하고 서운해하던 마음을 알아챈 그 순간, 이 어설픈 연극은 끝을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넌 우리가 고작 결혼 때문에 뉴스에서 호흡이 좋았다고 생각해?” 해원의 눈동자에 점차 선명한 이채가 서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아 세이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아니잖아. 너, 내 몸 좋아했잖아.” “선배.” “원한다면 언제든 자줄게.” 잠시 뒷머리를 세게 맞은 느낌에 세이는 눈만 깜빡이다 이내 서늘하게 해원을 바라봤다. “선배가 찾는 게 데스크 파트너가 아니라 잠자리 파트너였나 보죠?” 차갑게 내뱉으며 그를 스쳐 지나가는데, 유독 낮은 음성이 그녀의 발목을 잡았다. “이혼해줄게. 그러니까 돌아와.” 누구보다 무심하기만 하던 사람이, 고요한 호수처럼 잔잔하기만 하던 사람이 눈동자에 불안감을 가득 담고 저를 흔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