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임신하고도 내 그늘 안에서 탈출을 감행할 수 있는 대범한 여자라는 거.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 온몸을 관통하는 듯한 시선을 버틸 재량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한마디에 머리채 잡혀 시선이 본능적으로 올라갔다. 마구잡이로 흔들리는 동공에 남자는 더더욱 확신하기 이르렀다. “설마 제 안에 있는 아이가 전무님 아이일 거라고 생각하신 거예요? 그런 거라면 돌아가세요. 잘못 짚으셨어요.” “아니야?” “아니에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떨리는 손을 부여잡고 정수기 곁으로 다가섰다. 짐승과 마주했을 때 등을 보이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너한테 그렇게 좋다고 병신처럼 굴었던 게 나야. 아닐 리가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