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부천군(인천) 항구. 숨이 턱까지 차오를 만큼 달리던 윤한아는, 막다른 길에 다다르고 나서야 발을 멈췄다. [어서 체포해!] 뒤에서는 일본인 순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윤한아는 함께 도망치던 남자를 돌아보았다. 이재현. 죽지 않은 채 날 만나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피범벅을 하고 정신없이 달려온 내 연인. 하지만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 꽉 쥐고 있던 손에 어느샌가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새 차가워진 손 위를 크고 따뜻한 손이 조심스럽게 덮었다. 작게 토닥거리는 듯한 손길에 옆을 보자 이재현이 다정하게 웃고 있다. 불현듯 호흡이 안정된 것이 느껴졌다. 이제야 편안히 숨을 쉴 수 있었다. 아이를 달래듯 조심히 안아주던 너의 품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한 사람이라도 도망쳐야지.” 이재현은 윤한아에게 총을 들린 채 총구를 제 심장에 겨누었다. “계속 밀정인 척해. 너는 할 수 있어.” 결국 방아쇠가 당겨지고. “우린, 성공할 수 있어.” 이재현은 총에 맞고 바다에 가라앉았다. 희미한 목소리만을 남긴 채. “나의 숨은 너의 것. 그러니 넌 나를 죽여도 좋다. 내가 죽더라도 우린 사랑이었으니.” 1926년 일제강점기, 무엇보다 조국을 사랑한 이들이 피와 눈물로 만든 치열한 독립운동. 그리고 그 중심에 선 군관학교 교사 이재현과 이중 첩자 윤한아의 이야기. <경성, 1926: 빛이 새어드는 시간>, 매주 월/목 연재 #로맨스 #시대극 # 근대 #경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스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