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멋대로 도망친 주제에, 애까지 생기셨네?” 감히, 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이연은 아무것도 아닌, 저를 위한 도구에 불과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이연은 착하고 순진해서 저를 떠날 리 없었으니까. “억울한 얼굴이네. 내 애라고 거짓말이라도 하고 싶어?” 하지만 기어코 곁에 이연을 다시 데려오고서야 재헌은 깨달았다.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녀의 존재가 제게 얼마나 컸는지를. 윤이연은 언제든 저를 버릴 수 있지만, 자신을 그녀를 버릴 수 없음을. “서재헌 씨 아이 아니에요. 그리고, 낳을 거예요.” 너는 대체 뭐지? 뭘까? 어떻게 나한테만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눈 딱 감고 속는 척이라도 해 주려 했는데, 윤이연은 그럴 기회도 주지 않았다. “낳아, 내 옆에서. 그게 네 발목이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여자의 발목을 거머쥐었다. “어디 한번, 네 인생 저당 잡혀서 살아봐.” 처음부터 만나서는 안 될 운명인 줄도 모르고. 후회해도 소용없을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