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뵙네요, 윤혜강 씨.”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인 줄로만 알았다. 그를 맞선 자리에서 재회하기 전까지만 해도. 압도적으로 뜨거웠던, 그 남자가 서정 호텔 상무 정무경이라니. “지나간 남자랑은 다시 얽히지 않는 게 제 원칙이라서요. 비즈니스 관계라면 더더욱요.” 다분히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맞선이 불쾌해서 넘어오지 못한 선을 그었지만. “난 당신이랑 친구, 사업 파트너 이런 거 안 합니다. 애인이나 남편이면 몰라도.” 그는 기어코 선을 넘는다. “결혼은 절대 안 해요. 나 비혼주의자예요.” “잘됐네요. 내가 당신한테 원하는 건 애정이나 결혼 따위가 아닌 비즈니스니까.” 비혼주의를 고수하기 위해서 결혼하자는 아이러니. 태연한 얼굴로 나른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 무경의 유혹은 한없이 달콤했다. “언제든 넘어가고 싶어지면 넘어와요.” 불현듯 손끝이 찌릿했다. 견고한 경계를 자꾸만 허물고 싶어져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