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잎 대신 눈발이 날리던 3월의 캠퍼스, 서태경은 동아리 신입 모집 부스에서 김서우를 만난다. “너도 기억하지? 김서우. 우리 고등학교 한 해 후배.” 귓불에 몇 개씩 박힌 피어스와 핑크색 머리. 익숙한 얼굴이 낯선 꼴을 하고 있었지만 저를 볼 때마다 홀린 듯 멍하니 바라보는 눈빛은 너무도 여전했다. 그래서인지 서태경은 어쩐지 그녀가 조금 반가운 것도 같은데. “군대 가신다고…….” “뭐?” “선배님 곧 군대 가신다고 들어서…….” 군 입대를 앞두고 만취한 태경을 찾아온 서우는 그날 밤 이후 연락이 끊어지고. “김서우 자퇴했어요.” 5년 후, 예상치 못한 시간, 장소에서 태경은 다시 그녀와 재회하게 되는데. “인사해요, 태경 씨. 여긴 우리 와이프.” * * * “오랜만이에요, 선배님.” 서우가 더듬지도, 어물거리지도 않는 또렷한 말투로 태경을 똑바로 보며 인사를 건넸다. 그 눈을 마주하는 찰나, 태경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은 김서우에게 화가 났다. 지금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질리지도 않고 내내 화를 내고 있었다. 그것을 여태 몰랐다는 게 이상할 정도로, 얼굴을 보자마자 머리가 빙글 돌고 목구멍이 뜨겁고 관자놀이가 욱신거릴 정도로 열이 올랐다. ‘너 그거 먹튀 아니야?’ 그 순간 분명해졌다. 둘 중에 진짜로 먹튀를 당한 게 누구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