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메뉴 건너뛰고 본문으로 가기

홍보 게시판

54화. 1호 여사

금석강 2026-03-21 09:20:43 54화. 1호 여사 * * * “내래 나이도 그렇고, 우리 이미 얼굴도 아는 사이니, 앞으로 철상 아저씨라고 불러보갔습네다.” “네? 아, 네. 여사님, 원하시는 대로 불러주십시요,” “철상 아저씨?” “네, 여사님.” “호호호, 훨씬 좋구만요. 철상 아저씨라고 부르는 거이가.” “네, 여사님” “최고지도자 동무가 저렇게 쓰러져서 지금 죽니 사니 하는 판에, 내가 속심 없이 이렇게 웃는 게 참 이상타 할 거 같습네다, 철상 아저씨?” “네? 아닙니다.” “내래 모두가 알다시피 최고지도자 동무와 혼례를 치르고 공화국의 1호 여사가 되었지요. 그렇게 최고지도자 동무를 모시고 살면 그게 다인 줄로만 알았디요. 하지만 혼례 치르고 얼마 안 되면서부터서리, 우리 내외 사이란 거이, 그거이 일반 가정집과 같을 수 없다는 걸 내래 쓰디 쓴 사약 맛처럼 깨달은 거디요.” “네, 여사님.” “고거이 참으로 고약한 맛이었디요. 남편과 아내, 가정과 행복, 그깐 거 다 없이 살아 온 겁네다.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다 포기하게 됐고, 대신 다른 희망을 갖고 살기 시작했디요. 고거이 내가 지금 이순까지디 견디고 살아 온 힘이디요. 다른 희망, 고거이 바로 버티고 견딘 힘이었디요.” “네.” “이제 그 순간이 온 겁네다. 드디어 온 겁네다, 철상 아저씨. 내가 철상 아저씨를 믿고 도와줄 테니, 철상 아저씨는 나를 믿고 도와달라요.” “네. 알갔습네다. 긴데, 무슨 방도가?” “내래 이미 말했디 않습네까. 이날만 오기를 기다리면서 수백, 수천 번도 더 생각하면서 준비해 온 게 있디 않캈습네까.” “아, 네. 알겠습니다. 여사님만 믿고 따르겠습네다.” “나도 같습네다. 철상 아저씨만 믿갔습네다. 내래 철상 아저씨를 오래전부터 살펴보고 있었습네다. 어떤 동무인지, 어떤 성격인지, 어떤 사상인지 말입네다. 철상 아저씨 정도면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었습네다. 근데 고거이 마땅한 기회가 없었디요. 철상 아저씨를 내 사람이라고 드러내놓고 둘 기회 말이디요.” “네? 저는 그런 걸 전혀 몰랐습네다.” “철상 아저씨가 근무 중인 그 자리, 고거이 아무나 거저 가는 자리 아니디 않습네까? 내래 앞뒤로 한마디씩 거들었던 사람이디요.” “아, 네, 여사님. 그랬군요. 미련한 제가 여태껏 그걸 모르고 있었습네다. 여사님, 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네다. 아, 진짜 몰랐습네다. 이런 불충한 군관이 또 없습네다. 여사님.” “지금 와서리 인사 받으려고 하는 달달한 말이 아닙네다. 눈 여겨 보았었고 믿을 만한 사람이란 걸 내래 알고 있었는데, 드디어 하늘이 오늘 우리에게 기회를 내려주신 거란 말입네다. 이게 우연히 그냥 거저 떨어진 게 아닐 거란 말입네다.” “네, 알겠습네다. 여사님.” “이제부터 내 말 잘 들으시라요, 철상 아저씨. 우선 쿠데타 사건 최종 보고서부터 같이 보면서 얘기하갔습네다.” “네, 여사님.” 김철상은 최고지도자와 단독 만남을 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최고지도자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졌다. 이 사실이 만약 조금이라도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왜곡돼 알려진다면, 김철상은 무사할 수가 없었다. 즉시 사형을 받을 수도 있는 위기였다. 1호 여사의 이날 제안은 선택적인 게 아니었다. 싫으면 거절할 수도 있는 게 아니라, 김철상은 이미 1호 여사의 어떤 알 수 없는 계획에 포획한 거였다. 1호 여사가 만약 최고지도자의 심장마비와 그 후속 조치 과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김철상에게 불리한 발언을 한다면, 김철상의 목숨은 그 순간 끝이었다. 1호 여사는 싫든 좋든 김철상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운명의 상수] 되어있었다. 김철상은 어떠한 사전 계획도 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해서 [1호 여사]를 먼저 찾았었고 이곳으로 불렀던 것이다. 어떤 정치적 계산도 없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누군가의 바로 앞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진다는 걸 예상해서 뭔가를 미리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었다면, 그건 바로 1호 여사였을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수백 수천 번도 넘게 그 순간을 상상하며 이날만을 기다리고 준비해 온 사람이 1호 여사였다. 바로 그 점이 김철상과 1호 여사의 차이였다. 1호 여사가 그녀의 말대로 이날만을 기다리며 준비해 온 것이 사실일지라도 김철상이 1호 여사를 부르고 만난 것이 과연 어떤 상황으로 전개되며 두 사람의 앞날과 운명을 만들지 알 수 없었다. 김철상은 여전히 두려웠다. 최고지도자가 쓰러지는 순간의 두려움과 비슷한 파동으로 계속해 그를 휩쓸고 지나갔다. * * * 1호 여사는 최고지도자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함경남도 락원군의 미사일 부대 군병원에 입원 중인 사실을 당분간 비밀사항으로 통제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건 오랫동안 통제될 수 없는 사항으로 보였다. 북한 사회와 국제사회에는 한동안 비밀 유지를 할 수 있겠지만, 최고지도자를 둘러싸고 있는 당과 군의 최측근들에게까지 비밀로 할 수는 없었다. 1호 여사는 최측근들에게 5일 정도만 비밀 유지를 가능하게 해달라고 김철상에게 지시했다. 그 5일 동안 1호 여사가 최고지도자를 대신해 결재판에 도장을 찍어 필요한 것들을 처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