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바로가기 메뉴 건너뛰고 본문으로 가기

자유 게시판

그냥 단편집

어중간한 인간 2025-10-16 12:36:47 단편집.6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나는 정자에서 책을 읽었다. 딱히 의미 있는 무공 비급이 아닌, 그저 시가 적혀 있는 시집을 읽으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청애 사형! 또 여기서 뭐 하고 계십니까!"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나는 고개를 돌려 날 부른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짧은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동자, 키가 작은 하원 사제가 뛰어 온 듯 숨을 고르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저 하늘을 보고 있었단다." "사형! 오늘은 그날 아닙니까…" '그날이라.' 여러 후기지수들이 나와 무위(武威)를 겨루고 교류하는 광아제(光峩). 그 이름대로 누구보다 높이, 누구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주인공이 되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 나는 이 대회를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 내 성취는 또래들 중에서 가장 높다고 자부하며, 아마도 날 이길 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또 이 광아제가 싫은 이유는— "그러고 보니 사형. 장문인께서 정말로 사형의 신랑감을 대회에서 찾겠다는 게 진짜입니까?" "그렇다는구나." 나는 그저 여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장문인은 그게 싫으셨던 모양이다. 몸을 일으켜 나의 방으로 조용히 걸어가 거울 앞에 섰다. 연갈색의 긴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를 가졌고 주변에서는 미인이라 칭송하는 외모를 가진 나. 하지만 모두 부질없다. 내가 왜 광아제에서 이긴 사람과 이어져야 되는 걸까. 상품처럼, 물건처럼 취급당하며 팔려나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오해겠지. 이내 촉촉한 눈물이 앞을 가리며 흘러내렸다. "사형…" "나가줄래, 사제…" 매우 불쾌하고 짜증 나고 또 억울하다. 나도 강한데 스승님보다도 강해질 자신이 있는데 왜 나를 다른 사람과 이어주려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냥 여유롭고 자유롭게 지내면 안 되는 걸까? 모든 건 이 예쁜 외모 때문이다. 내가 못생겼더라면, 혹은 어딘가 하자가 있었더라면, 장문인이 날 걸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 얼굴에 검으로 상처를 낸다면…' 상처 난 여자를 좋아할 남자는 없을 터. 지금이라도 얼굴에 상처를 낸다면, 이곳에 남지 못할망정 난 여유롭고 자유로워질 수 있다.하지만 난 하지 못한다. 얼굴에 상처 입히기에는 내가 너무 나약하고 한심하여 무엇도 하지 못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장문인이 최근에 노망이 나셔서 그런 것일까. 돈이 부족한가? '왜, 왜, 왜, 왜, 왜!' 나무 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속으로 소리쳤다.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얼마나 내가 미웠으면 이런 취급을 하는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나며 그저 억울했다. "아얏…" 바닥을 치던 부분을 보니 나무 바닥에 튀어나와 있던 가시가 박혀 피가 흐르고 있었다. 멈출 기색 없이 피는 계속 흘렀다. 상처 나지 않은 손으로 가시를 뽑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고통에 나오려는 신음을 삼켜가며 하나씩 하나씩 박혀 있는 가시를 뽑았다. -똑똑 이제 시간이 되었나 보다. "청애, 나와라." 익숙하고 원망스러운 남성의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내가 다시 몸을 일으켜 문으로 곧장 걸어가 열었다. 청령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같이 이곳에 입문한 동기. 하지만 장문인이 나를 팔 생각을 할 때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방관자. 그저 원망스럽다. "청애…" 나는 청령의 말을 그대로 무시하며 밀치고 지나쳤다. 그리고 광아제가 진행되는 장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맑고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은 채 장문인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아하하! 이보시게, 왔구려! 이 친구가 내가 자랑하는 청애여." "그러한가? 정말 아름답게 생겼구먼!" 저쪽에 앉아 계시는 어르신은 아마 사천당가의 장문인일 것이다. 몸에서 나는 은은한 독의 향기가 내 생각을 뒷받침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천당가의 장문인을 기준으로 왼쪽에 쭉 앉아 계시는 분들은 오대세가의 장문인들일 것이다. 장문인은 계속해서 내 자랑을 하시며 어디 세가 사람의 제자가 데려가면 좋겠느니 어쩌느니 떠들었다. 듣는 내 심정은 모른 채 그저 나를 어디로 보낼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바람을 쐬러 잠시 자리를 비운다고 하고 답답한 곳을 나와 광아제의 입구에 섰다. 여러 문파들과 떠돌이 개방, 심지어는 강호인이 아닌 사람들마저 광아제에 참가했다. 입구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여러 사람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그때 생글생글 웃으며 내게 다가와 말을 거는 남자가 있었다. 딱 봤을 때는 이류 정도 돼 보이는 남자였다. 생긴 건 짧은 갈색 머리에 특이한 보라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특정 문파 사람은 아닌 듯 시장에서 파는 간단한 의류를 입고 있었다. 문파의 제자들은 문파의 옷을 자랑스럽게 여기기에 매일 입고 있어서 이 자가 문파인이 아닐 거라고 예측했다. "저기… 소저? 제 말을 듣고 계신지요?" "아, 죄송합니다만 다시 말씀해 주시지요." 남자는 나의 무례한 행동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생글생글 웃으며 다시 물어보셨다. "광아제로 가려면 이쪽이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 남자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포권을 취했다. "감사합니다." "아… 아닙니다." 나도 이어서 포권을 취했다. 광아제가 시작하는 곳으로 향하는 그를 보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신비로운 사내.' 내게 아무 의도 없이 다가온 첫 남자였다. 모든 남자는 내게 다가올 때 음흉한 의도나, 아니면 이름을 알아내려고 다가오는 남자가 다였는데 저 남자는 아무 의도도 없었다. '보라색 눈동자… 기억해 둬야겠어.' 그때 들려오는 큰 종소리에 나는 황급히 장문인이 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오대 세가의 장문인들 사이에 앉아 불편한 기색을 숨기며 비무 대회를 관람했다. '저 대회에서 이긴 사내가 내… 신랑감이 되는 것인가.' 나는 손에 감은 붕대를 만지작거리며 불안해했다. 표정으로 티를 내지는 못했지만 속은 점점 타들어 갔다. 여러 사람들의 비무를 보며 '제발 이기는 사람 없기를…'이라고 생각하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러던 중 한 우락부락한 남자가 내게 다가와 포권을 취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반갑습니다, 장문인분들과 소저." 저 녀석은 내가 아는 바에 따르면 망나니에 여색을 즐기는 쓰레기. 하지만 무위가 대단해 인정받은 사내라고 알고 있다. "소저. 몸매가 참 예쁘네요."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며 걸치고 있던 옷을 당겨 몸을 가렸다. 시야가 흔들리며 두려움을 느꼈다. 설마 이 남자에게 내가 가는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아니나 다를까 저 망나니는 모든 참가자들을 모두 압도하며 승리를 쟁취했고,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피가 말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덧 참가자가 다섯 명 남았을 때 망나니가 손을 들어 소리쳤다. "다 같이 덤비는 비무는 어떠신지요!" 혀를 낼름거리는 망나니를 보고 있자니 기분이 불쾌했다. 내 기분을 전혀 모르는 장문인들은 재밌다는 듯이 하하 웃으며 망나니의 의견을 수락했다. 내가 속한 세가의 장문인이 일어나 크게 외쳤다. "자! 이번 비무 대회에서 이긴 자에게는 내 아끼는 제자인 청애와 만날 권리를 주겠네!" 그 말씀에 주위가 달아오르며 환호가 터져 나왔다. 나 빼고 모두가. 다섯 명의 참가자가 무대 위에 섰고 나는 불안에 떨며 입술을 깨물고 있는데 눈에 익은 사내가 보였다. '저 자는…' 보라색 눈동자의 사내였다. 무대 위에서도 생글생글 웃는 게 그자가 확실했다. 겉으로 보이는 내공이나 외공은 이류보다 낮아 보이는데 어떻게 결승까지 올라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운이 좋은 분이신 건가…?' 곧이어 큰 종소리가 울리고 망나니가 먼저 움직여 두 명의 참가자의 머리를 잡고 바닥에 꽂아 버린다. 그리고 보라색 눈의 사내는 한 명의 참가자를 흐르듯 밀쳐내 장외로 밀어버린다. 망나니와 사내만 남은 상황, 망나니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어이, 거기 너! 어디 문파냐. 여기까지 온 거면 적어도 유명한 세…" "저기, 싸움을 말로 합니까?" 생글생글 웃으며 망나니의 말을 자르는 보라색 눈의 사내. 망나니는 얼굴이 빨개지며 목에 핏대가 섰다. "남이 말하는데 자르지 마라!" "진정하시는 게 좋겠는데요?" 망나니의 얼굴이 더욱 울그락불그락 해지더니 폭발적인 속도로 그 사내에게 달려들어갔다. "그 개 같은 얼굴을 뭉개주마!" 내게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주먹이 그 사내의 얼굴을 향했다. 나도 모르게 입을 막으며 뒷걸음질 치며 '안돼!'라고 속으로 소리쳤다. "참 느리시네요. 이런 공격을 하는데 다들 어떻게 지셨는지." "뭐… 뭐얏!" 그 사내는 주먹을 아슬아슬하게 피하며 망나니를 도발했다. 도발에 걸려든 망나니는 소리를 막 지르며 주먹을 연속으로 내질렀다만, 사내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슬아슬하게 피하는 것 같았지만 결코 맞을 것 같지는 않았다. 내게도 안 보이는 주먹을 피하다니 조금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단 한 번의 공격에 망나니는 멀리 날아가 버렸다. 장문인들도 나도 관중들마저도 상상치도 못한 승자가 나오자 모두 뜻을 맞춘 듯 광아제 내가 아주 조용해졌다. 그리고 이 침묵을 깨고 웃으며 말하는 그 사내는 모두에게 환호를 받았다. "운이 좋았네요." """와!!!!!!!!!!!""" 나는 허탈한 나머지 의자로 쓰러지듯이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나는 저자에게 시집을 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때 사내가 장문인들이 있는 곳에 포권을 취하며 밝게 웃었다. "정말 재밌는 승부였습니다! 하지만 전 저기 계시는 소저를 받지 않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입에 미소가 걸리며 이유 모를 감정이 북받쳐 올랐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고, 나는 곧 광아제가 끝나기 전에 장문인에게 하산한다고 선언하고 뒤도 안 돌아보고 축제를 나갔다. 후련하면서도 기쁜 마음에, 이곳에 있으며 매번 차갑던 나의 표정이 녹아내리듯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신난 마음을 안고 어디로 가면 좋을지 고민하며 계단을 내려가는데, 그때 그 사내가 다가와 나를 불렀다. "행복하십니까, 소저." 나는 놀란 마음에 뒤를 돌아 사내를 바라보며 끄덕였다. "예, 무언가 절 옥죄던 끈이 사라진 듯 홀가분합니다." "다행입니다." "그런데 제게 무슨 용무십니까?" 사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와 말했다. "한 수 배우고 싶습니다." "예?" "전 이 강호의 모든 무술을 익히는 게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해낼 수 없는 목표를 자신 있게 말하는 사내의 얼굴을 빤히 보며 어이가 없었지만, 뭔가 저 자라면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이라면…" "감사합니다!" 우리 둘은 계단을 내려가며 대화를 나누고, 사내가 아는 연무장으로 가기 위해 길을 떠났다. "그러고 보니 별호가 무엇입니까." "하하. 전 떠돌이라서 딱히 없답니다." "그런가요…" "제 이름은 진현입니다. 소저의 이름은?" "청애라고 합니다." "이쁜 이름이네요. 제가 아는 점소이가 있는데 그쪽에 있는 연무장을 빌리도록 하죠." "남궁세가 연무장이 비싸긴 하죠 후후"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