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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게임4판타지> 주인공이 내적으로 성숙하는 명작을 읽고 싶다면

심해탐사대 2022-09-27 14:26:45 <게임4판타지>는 판타지로서는 드물게 입체적인 캐릭터와 플롯을 통해 인물의 내적 성장을 그려내고 있는 소설입니다. 대체로 주인공의 외적 성장을 드래곤볼식 파워밸런스로 업시켜나가는 대부분의 판타지 소설들과는 서술 포인트가 상당히 다르지요. 듣기로 작가가 고등학생 때부터 구상했던 소설을 고치고 다듬어 뒤늦게 선보인 작품이라고 하는데요. 학생 때의 망상이라면 보통 이불킥을 할 만큼 낯부끄럽고 부족한 세계관이기 마련이지만, 검미성은 달랐습니다.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큼 현실적으로, 또 창의적으로 한 세계를 그려냈거든요. <광란의 트롤랑>, <망겜의 성기사> 등으로 독특하지만 완성도 있는 스토리를 몇 번이나 보여준 검미성 작가지만, 그만큼 특유의 암울한 분위기와 사이다가 부족한 전개방식 등으로 어지간한 웹소설 코어 독자층이 아니면 깊이 즐기기 어렵다는 단점도 오래 지적된 사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웬일로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소드마스터 주인공을 앞세워 게임판타지 무쌍 도입부와 같이 작품을 시작하는데요. 너무 시원하고 유쾌해서 불안해질 즈음, 역시 작가의 소신은 어디 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어 인물의 과거와 트라우마를 그려내어, 누구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사건을 통해 독자의 공감을 자아내죠. * 아래 내용에는 스포가 있습니다!! 어느날, 현대 세상이 판타지 세계와 연결되었습니다. 마법과 드래곤, 엘프 왕족 등 판타지 세계의 각 인물들은 최선을 다해 저항하지만, 결국 압도적인 화력과 현대 무기 아래서 판타지 세계는 큰 위기를 맞게 되죠. 그러자 판타지의 주민들은 생각했습니다. 저 현대 국가의 거대한 힘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이쪽에도 큰 비대칭 전력이 필요하겠다고 말이죠. 하여,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차원의 틈새에서 한참 수련한 후 소드마스터 부대를 만들어 저항하겠다는 작전이 수립됩니다. 거기에 지원한 것은 세월의 영향을 적게 받는 엘프들. 그리고 그들 곁에서 수발을 들기 위해 파견된 일부 신분이 낮은 인간 종이었죠. 주인공 가온은 그들을 이끌기 위해 파견된 후긴 왕국의 후계자였습니다. 화로의 여신의 사제이자 왕족으로서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좀 더 얕게는 그리하여 왕국의 신민들에게 호감을 가지기 위한 결정이었죠. 그러나 일이 예상과 달리 어그러진 탓에, 그들은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을 차원의 틈새에 갇힌 채 보내게 됩니다. 일부는 그 안에서 처절한 싸움 끝에 죽어가고, 언제 나갈 수 있다는 예정조차 가지지 못한 채 싸움을 이어가죠. 그런데 그렇게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후. 간신히 바깥으로 나온 가온 일행은, 놀랍게도 이미 전쟁이 끝난지 한참이 지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심지어 왕국은 이미 식민지 치하의 민주주의 체제로 바뀌어 왕가의 사람들은 전부 처형되었고, 일부 엘프들은 반제국주의의 이름 아래 베트남전 등에 참여하여 게릴라로 활동하고 있었죠. 차원의 틈새에서 그 온갖 역경을 겪은 끝에 마침내 반신이자 소드마스터, 화로의 여신의 지상대행자가 된 가온은 더 이상 환영받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긴 고통의 시간. 고귀한 의지로 오랜 시간을 버텨낸 까닭에 바깥에서는 영광이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건만, 그는 그저 시간을 표류하여 떠밀려온 난민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그는 왕국을 잃어버린 왕족이었으며, 더 이상 믿는 이 없는 신의 챔피언이었고, 모든 동족이 처형당하고 홀로 살아남은 그레이 엘프의 유일한 생존자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막아서는 모든 것들을 불태우고 베어버린 뒤, 방구석에 칩거하며 폐인 생활을 시작합니다. 고난 끝에 영광은 없었다, 그저 고통의 시간이 지난 후에는 다시 고통이 이어졌을 뿐이라며 말이죠. 그러나 그렇게 다시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난 후. 소드마스터 가온은 판타지 세계를 본딴 모 가상현실 게임에 접속하면서 다시 과거의 잔재와 접촉하게 됩니다. 이미 너무나도 긴 시간 커뮤니티 생활과 게임을 한 탓에 지나치게 소시민적으로 변한 성격과 찐따미를 가진 채 말이죠. 그러나 그는 그 과정에서 자신이 지금껏 방기해왔던 책임, 이를 해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와 자기혐오를 극복해내고 내적으로 더 나은 인물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저 자포자기하여 계속 미뤄두었던 내면의 트라우마를 이겨낸 그의 손에는, 이전과는 또 다른 소드마스터의 증거가 깃들게 되죠. "재를 더럽다 여기지 말라. 재 속에서 불사조가 날아오를 테니." 주인공과 함께하는 화로의 여신의 기도문입니다. 기존 차원의 틈새에서 잿빛 검기를 각성한 그가, 이후 자신의 과거를 이겨내고 마침내 붉은 검기를 터뜨린 것을 생각해보면 분명 유의미한 떡밥이겠지요. 인물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욕망과 트라우마, 그리고 현실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주인공이 진정 내적으로 성숙해가는 이야기, <게임4판타지> . 분명 취향을 타는 작가지만, 한번쯤 맛본다면 절대 시간낭비는 아니라고 자부합니다. 이 소설이 재미있었다면 작가의 전작인 <망겜의 성기사>도 꼭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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