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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꼬마가 인외마족 역키잡 초록벌새 웹소설 전체 이용가 총 2화 2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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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생일파티에서 같이 라즈베리 파이를 먹고 싶었다. 올해 생일엔 욕심을 너무 부린 건지 모든 걸 잃고 말았다. 부모님도, 집도, 마을도. 모든 게 라즈베리 때문이었다. 그때 라즈베리로 장난을 치지 않았다면 뭔가 달라졌을까? 아니. 라즈베리가 아니어도 어떤 구실을 들어서라도 그 사람을 생일파티에 초대하고 싶었을 거야. 그도 그럴 게 대부님은 태어나서 본 사람 중에 가장 아름다우니까. 보는 것만으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론 만족할 수 없었을 거야. 만약의 가정을 들어도 결론은 한결같았다. 생일파티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 이제는 모두가 사라지고 유일하게 남은 사람. “그럼 절 따라오시겠습니까? 대자님을 이 숲에 버리고 같다는 선택지는 없으니까요.” “네. 저 대부님을 따라가고 싶어요.” “다시 말하지만 전 언젠가 살해당할 겁니다. 제가 이전의 왕을 죽였듯이 더 강한 마족이 절 죽이고 왕의 자리를 차지하는 건 시간 문제니까요. 그래도 절 따라오실 겁니까?” “네. 저 후회할 것 같아서요.” “어느 쪽을 선택하셔도 후회는 남을 겁니다. 그렇다면 마음 가는 쪽을 선택하는 게 좋겠지요.” 이 여행의 끝은 대부님의 죽음이고 그걸 지켜보는 건 괴롭겠지. 대부님이 나의 시작을 보셨으니 내가 그분의 최후를 봐야 해. * * * “내가 밉니?” 밉냐고? 그렇지 않다. 이데베르트가 사람을 죽일 땐 늘 자신이 원인이었으므로. 그냥 모든 게 자기 탓 같았다. 그가 처음부터 위대한 숲에 오지 않았다면. 그가 아일렛을 발견하고 정을 주지 않았다면. 아일렛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죄책감의 눈물이었다. “그냥 전부 다 잊고 싶어요. 그런데 너무 생생해요. 눈을 감으면 사람들이 죽는 게 보여요.” “내가 네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안전한 은신처에 둬야 했는데. 내 생각이 짧았구나.” “저 어떡해요? 대부님. 이런 기억들을 가지고 몇백 년 아니 몇천 년을 사는 건 너무 가혹해요.”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다. 망각은 인간의 특권이므로. “잊게 해주세요. 대부님. 기억 소거 마법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걸 저에게 써주세요” 이데베르트는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기억 관련 마법은 인격에 영향을 줘 아일렛이 아일렛이 아니게 될 수 있다. 이데베르트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아일렛이 계속 살길 원했다. 이 기억을 지워 편안하고 안락해져 버린 아일렛은 그가 아는 아일렛이 아닐 것이다. “아일렛.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네 곁을 계속 계속 지켜줄 의향이 있어. 하지만 기억을 지우고 편안해하는 넌 네가 아니야. 아일렛의 껍데기를 가진 무언가가 되는 거야. 기억의 연속성이 유지되는 아일렛만이 진짜 아일렛이야.” “그럼 제가 기억을 지우면 절 떠날 거예요?” 아니라고 말해주길 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곁에 있겠다 말해주는데 그게 조건부라니. 편해져 버리면 아일렛이 아니라고? 기억이 지워지면 진짜 아일렛은 죽어버리는 건가? 가짜가 되는 순간 떠나버린다니. “아빠도 엄마도 이제 제 곁에 없는데 대부님까지 절 떠날 거예요? 제가 살아있는데 절 떠나요?” “아니야. 아일렛. 난 네가 죽으면 떠날 거야. 네가 살아있는 한 난 너를 떠나지 않아.” 내가 ‘죽으면’이라니. 기억을 지우고 아일렛이 죽어버리면 이데베르트는 떠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일렛은 몇 날 며칠 계속 앓았다. 몸에선 열이 났고 식은땀이 흘렀다. 눈을 감으면 부모님이 처참하게 죽은 모습과 이데베르트가 사람을 죽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을 지우고 편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이데베르트가 떠나고 남을 자신은 지금보다 더 망가질 것이다. “눈을 감으면 그들이 보여. 살려달라고 애원하는데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무시해. 네가 그들을 구할 필요 없어. 다 자업자득이야.” “이데베르트. 칼 좀 주세요.” “아일렛. 내가 너에게 칼을 줄 리가 없잖니.” 이데베르트는 진작에 날붙이며 모서리, 딱딱하고 날카로운 건 다 치운 뒤였다. 아일렛은 칼로 눈을 찌르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세상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세상은 너무 끔찍했다. “대부님. 제 눈 좀 찔러주세요.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요.” “나보고 널 찌르라고? 차라리 네가 나를 찌르렴.” 이데베르트는 아일렛이 두 손으로 자기 손을 감싸게 했다. 손끝에 종이를 떨어뜨리자 예리하게 벼린 칼끝에 닿은 것처럼 종이가 나뉘어 바닥으로 떨어졌다. 놀고 있는 반대쪽 손으로 아일렛의 두 손을 감싼 그가 부드럽게 가르쳤다. “이건 아주 잘 드는 칼이야. 세상을 보지 않겠다고 했지? 그럼 나도 안 보겠다는 거구나. 네가 직접 찌르렴.” 칼날 같은 손끝이 이데베르트의 눈꺼풀 위를 스르르 지나갔다. 멈추려 했으나 아일렛의 힘으론 그를 도무지 막을 수 없었다. 붉은 열매 같은 핏방울이 아일렛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눈가에 맺혔다 볼을 타고 흘러 턱가에 아슬아슬 매달린 피. 마주친 검은 눈동자는 피와 집착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일렛은 빛을 잃을 위기에도 계속 자신을 보는 눈에 숨이 멈췄다. 예감했다. 이 기억 또한 잊히지 않으리. 몇천 번이고 이 순간을 다시 떠올리리라. “이제 그만. 알겠어요. 그만하세요.” 도리질하는 아일렛의 눈에 눈물이 투두둑 떨어졌다. 아일렛은 슬플 정도로 그의 절실함을 느꼈다. 변하지 않고 남아달라고. 처참한 기억을 남겨 미안하다고. 스스로 눈을 찌를 바엔 차라리 자기 눈을 찌르라고. 서투르다 못해 섬뜩한 표현 방식이었다. * * * 글/그림 초록벌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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