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번 접견!” 마침내, 천사의 발끝이 지옥에 닿았다. 헝클어진 머리칼과 터진 입술을 매만질 여유조차 없던 바림은 전두엽을 박박 긁어낸 사람처럼 표정 없이 발을 옮겼다. 느리게 들린 시선의 끝에 걸린 한 남자의 얼굴. “강, 강이태?” 8년 만이었다. “꼴이 말이 아니네.” 바림의 얼굴을 샅샅이 훑어내린 그가 혀를 차며 손을 내밀었다. 실크 스카프처럼 부드럽게 펼쳐진 손가락, 백자 같은 순백의 손. 그 손에 닿은 바림의 눈빛이 포말처럼 부서졌다. “잡아. 시궁창에서 뒹굴기 싫으면.” “…?” “여기서 꺼내준다고.” “왜 날 도와주려는 거예요?” 음산한 소성이 접견실을 울렸다. “널 도와? 착각하지 마. 네 안위 따윈 관심 없으니까.” “그럼….” “아내가 필요해. 나와 결혼하면 이 지옥에서 나가는 거야.” 천박한 농담이었다. 아니, 그래야 한다. 왜냐면. “제정신이에요? 나 당신 형이랑 약혼했었어요.” 강이태는 바림이 결혼할 남자의 동생이었다. “양심에 걸려? 범죄자 치곤 X나 예의 있네. 근데, 네 죄명이 뭐더라? 살인미수 아니었나. 피해자는 내 형이고.” “내가 안 그랬어요!” “관심 없어. 난 시체 같은 아내가 필요하고, 넌 나한테서 형을 뺏어간 죗값을 치를 의무가 있으니까.” “나한테 왜 이래요.” 이런 비틀린 보복을 저지를 만큼 강이태는 형을 사랑했던 걸까. "마지막 기회야. 내가 나가는 순간, 네가 가진 유일한 희망은 폐기처분 돼.” 이곳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면, 바림은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각오가 되어 있었다. “할게요. 결혼.” * 적어도 비포장도로는 아닐 줄 알았다. 화려한 꽃잎을 밟으며 멋진 미래를 꿈꾸진 않더라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험한 여정은 아니겠지. 꿈에서조차 가정하지 않은 삶이 방향지시등을 켜지도 않은 채 삶에 끼어들었고, 바림은 무방비 상태로 충돌하고 말았다. 바림에게 강이태라는 인간은, 참담한 사고였다. "뭐, 뭐라고요?" 이름도 생소한 ‘사티리어시스(Satyriasis)’, 지금까지 정확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병으로, 일시적으로 성욕이 과다해지는 증상을 뜻한다. 그제야 깨달았다. “위층엔 절대 올라오지 마.” 엄중한 경고의 의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