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도망칠 생각이라면, 내 애는 놓고 가.” 꼬박 5년 만의 재회는 차가웠다. 한없이 깊은 그의 눈동자에 다정한 온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묻지, 그 남자의 애를 만든 게 나와 이혼하기 전이 확실한 건가.” 차게 비틀린 입매를 본 순간, 수호에게 행복한 삶을 주리라는 일념뿐이었던 날이 떠올랐다. “좀 더 그럴듯한 변명을 생각해 내야 할 거야.” 용서받지 못할 상처를 안긴 대가로 증오와 원망에 휩싸인 그를 마주하게 될 줄이야. “내 의심을 피하려면.” 아린은 성난 손아귀에 낚아채인 팔을 힘껏 뿌리쳐 내며 앙칼진 음성을 토해 냈다. “그래요, 당신 아이 맞아요!” 천륜이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님을 유독 그를 따르는 수호를 보며 깨달았다. “하지만, 달라질 건 없어요.” 결국, 정면 돌파를 감행한 아린은 집요하리만치 오롯한 그의 시선을 피하는 것마저 포기했다. “돌아갈 생각이었으면 도망치지도 않았어요.” 근본 없는 하찮은 처지임이 변치 않는 것처럼, 수호의 행복이 보장되지 않는 것에도 변함이 없으니까. 그리움에 사무쳐 매일 밤, 부르짖던 그를 또 한 번 등져야만 했다. 할 수만 있다면 되돌리고 싶은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망설여서는 안 되었다. “그러니까, 다신 찾아오지 말아요!” 이번에도 제 감정 따위는 가차 없이 갈무리하며 서둘러 돌아서던 그때, 시선을 가로막아 세운 그의 팔에 맥없이 허리가 채였다. “단단히 착각하는 것 같은데.”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강압적으로 울리는 사이, 조소를 머금고 뒤틀린 입술이 다시금 열렸다. “이번 선택권을 가진 건, 나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