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밤. 강원도 고성의 고요함에 은밀히 숨겨진 집. 집주인은 시끄러운 카메라 플래시를 피해 숨은, 명실상부한 톱배우 김시준. “죄송한데, 하룻밤만 재워 주세요.” 사기를 당해 오갈 데 없는 사진작가 소연이 카메라를 주렁주렁 매단 채로 문을 두드린다. “결혼은 없을 거라고 제가 분명 말했을 텐데요.” “이 바닥은 시장가야. 싱싱할 때 횟감으로나 팔리지.” 큰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진짜 열애설 상대가 필요했던 시준. “거래하죠. 그쪽이 지켜야 하는 건 딱 하나. 절대 나를 찍지 말 것.” *** 기획된 열애설 유포를 위한 3개월 간의 동맹. 눈이 녹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연인 관계. 그런데 이상하게도, 왠지 이 겨울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즈음. “이 사진.” 어슴푸레한 달빛 사이로 보이는 사진 한 장. “조건. 잊었어?” 오싹할 정도로 낮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 “솔직하게 말하지 그랬어. 몰래 찍고 싶다고.” 느긋한 걸음이 천천히 소연을 몰아붙였다. “잠시만, 흡-.” 소연은 숨을 멈췄다. 그는 두 팔로 도망갈 틈 없이 단단히 그녀를 옭아맸다. “난 더한 씬도 얼마든지 가능한데.” 형형하게 빛나는 새카만 눈. 다시 그 눈이다. 처음 그를 만난 날의 모습. “나가,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