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게 됐습니다. 주인공 자리를 뺏어서.” 거북하게 성스러웠던 그날의 결혼식을 망친 건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3년 전 미국에서 죽었다던 정인혁이었다. 남자의 말에선 미안함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세연은 상관없었다. 원치도 않는 주인공 자리를 뺏는다니, 오히려 감사할 지경이었으니까. 남자의 등장에 장내는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고, 고성이 오가는 난장판 속, 결혼식에 별 흥미가 없던 세연도 곧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오늘의 주인공은 자신이 아니라 명백히 저 남자, 정인혁이라는 것을. *** “뭐, 윤세연 씨만 원한다면 내 방에서 자고 가도 되고.” 망쳐버린 결혼식 이후. 불청객 정인혁이 세연에게 또다시 접근한 이유야 뻔했다. 세연의 약혼자 정영준을 엿 먹이려는 불순한 의도. 그걸 알기에 거절하려 했건만. “윤세연 씨도 나 이용하라고.” “그런 개자식한테 순순히 시집가고 싶어요?” 그 말에 세연은 마음을 바꿨다. 정영준의 목덜미에 남아 있던 누군가의 붉은 흔적, 그게 떠올랐으니까. “좋아요. 단, 정인혁 씨랑 같이 자고 싶어요, 진짜로.” 단순한 복수심으로 꺼냈던 말이었지만, 그때는 미처 몰랐지. 그게 불순한 관계의 시작일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