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나 기억이 다 날 때까지 하면 되는 건가?” 어느 날 눈앞에 나타난 남자는 10년도 더 된 악몽 속의 그 남자였다. 절로 눈이 커다래질 만큼 오묘한 분위기. 새까만 흑발과 대조되는 하얀 피부. 그리고 당장에라도 집어삼킬 듯 맹렬한 연갈색의 눈동자까지. “난 복수하러 왔어요.” 그가 말했다. “어떤 사람한테.” 운이 차츰 간격을 좁혀 왔다. 뜨거운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곧 그의 날카로운 턱선이 비스듬하게 기울었다. “겁도 없이 날 잊었길래.” 운이 반쯤 벌어진 소호의 붉은 입술을 느릿하게 문질렀다. 남자의 눈에 정제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욕망이 내비쳤다. 가져 본 적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인지 증오로 뒤섞인 욕망인지, 그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었다.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것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