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새끼랑 결혼도 하고, 신혼여행도 가.” 대서그룹 집안의 시녀, 철저한 을. 어린 시절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사인서는 머리를 조아리는 게 익숙했다. 짓밟히고 우스워지는 건 늘 그녀의 몫이었다. 그래서 대서의 주인이 될 권시준에게 이용당하는 것도 숨 쉬듯 감수해왔다. 하지만 그런 인서도 자신이 이렇게까지 저급한 취급을 당할 줄은 몰랐다. “대신 애는 내 애를 배는 거야.” 삶을 송두리째 뿌리뽑히고 남은 건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라는 선고였다. “배신이라도 당한 것 같아?” 비릿하고 날카로운 반응에도 인서는 멀거니 제 손 위의 청첩장만 바라봤다. 임계점을 넘어선 무언가가 그녀의 안에서 요동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