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복수를 위해 저를 얼마든지 이용해도 좋아요, 선생님. 하지만…… 당신이 나를 떠나는 것만은 용서할 수 없어.” “……뭐?” 언젠가, 언젠가는 시온이 자신의 이런 비뚤어진 마음을 알게 되는 날이 올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시온의 모습을 상상하며 죄책감에 시달렸을 뿐. ‘이런 반응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당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족을 빼앗긴 것처럼,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으러 공작가에 들어왔잖아요?” “그걸…… 어떻게…….” 역시나. 그것까지도 다 알고 있었구나. 비비의 몸에서 힘이 쭉 빠져나갔다. 그런 비비를 더 힘주어 지탱하며, 시온이 비비의 얼굴 가까이 몸을 숙였다. “그러니 기꺼이 드릴게요. 리모넬 공작가의 가장 소중한 것…… 선생님이 노리고 들어왔던 그것.” “아, 아니…….” 이건 잘못됐다. 늘 온순했던 시온의 눈동자가 광기로 번들거리자, 비비는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도망쳐. 나는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을 건드려 버렸어. “나는…….” 비비가 간신히 입을 뗐을 때, 그녀의 희미한 뒷말은 시온의 입술 틈새로 삼켜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