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영웅에게 큰 포상을 내리지 않을 수 없지.” 레티움 원정에서 빛나는 공을 세우고 돌아온 티베리온. 완벽한 승자의 위치에 선 그의 뒤를 따라오는 건 명실상부 아르논 최고의 군 사령관이라는 칭호와 가문의 이름을 드높인 명예, 그리고 사람들의 존경과 환호였다. 모든 것을 해결한 그는 이제 아내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 편안한 휴식을 만끽할 예정이었는데……. “티베리온 피델리 키넬리우스. 내 그대에게 혼사를 맺어 주고 싶은데.” 이미 결혼한 사람에게 이 무슨 말일까. “내 딸 율리아와 말일세.” 바짝 얼어붙은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파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티베리온의 미간에 작게 금이 갔다. 그건 율리아도 마찬가지였다. *** 사랑 없는 결혼이란 건 알고 있었다. 시작부터 글러 먹은 관계였으니. “공주님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기꺼이 이혼해 드린다는 조건, 어떻습니까?” 아무렇지 않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짓밟는 그를 사랑할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의 낭만은 짓밟힌 채로 시작됐으니.” 일러스트 © 감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