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수절이라도 할 줄 알았나?” 마음이 있어 결혼하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부부로서의 예의는 지켜 줄 줄 알았는데, 도한은 서로의 사생활을 지켜 달라며 첫 만남부터 쇼윈도 부부가 되기를 요청했다. 결혼이 무산되거나 다른 여자 문제로 이혼하면 곤란한 건 은소의 아버지만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집을 벗어날 기회가 생겼는데 놓친다니, 끔찍한 기분에 손끝이 저릿저릿했다. “괜히 서로 다른 애인을 만들었다가 다른 사람들 눈에 띄면 곤란하지 않나요?” “그래서?” “혹시 모르잖아요. 나와 최도한 씨가 잘 맞을지.” “잘 맞는다?” “일단 오늘, 같이 자죠.” 그래도 은소는 절박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도한을 제 곁에 두어야만 했다. “생각해 봐요. 우리 관계가 사랑은 없어도 서로 욕구는 풀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은소는 이 결혼을 위해 무엇이든 할 용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