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은 쉽게 사는 인생 나한테는 뭐가 그리 어려웠는지. 매사에 서투르고 세상일 맘대로 되는 게 없었다. 오래도록 발버둥치다가 지쳐 버려서 첫 번째 인생이 조용히 끝났을 때 사실 안심했다. 그런데 두 번째 인생을 추가로 받았다. 그것도 하필 좀비로. 이제 피곤하니까 제발 좀 내버려 뒀으면 좋겠는데 왜 하찮은 시체를 자꾸 움직이게 만드는 걸까. 뭘 해 봤자 잘 될 리가 없는데. "저는 신을 믿지 않는데요." "...태어나서 처음 만나 뵌 불신자가 신의 사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신에게 사랑받는 남자는 이상한 소리를 하고, 머리에서는 나무덩굴이 자라기 시작했다. 살아갈 기력 따위 전생에 다 써 버려서 될 대로 되라고 다 내팽개치고 싶은데.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다정해서 무섭다. 신께서는 다정한 분이고 당신은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우린 신에게 선택받은 자와 지내게 되어서 기쁘고 즐겁다고, 자꾸 나를 세뇌시키려고 한다. 두 개의 달이 뜨고 신이 기적을 내리는 세계. 사제와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고 언데드가 인간을 사냥하는 이 세계에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