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흐릿해진 기억이지만 그 때 그의 눈은 무척이나 슬퍼보였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른이 이것도 모르냐는듯 그를 잠시 째려보고는 책장을 넘겼다. 그리고 그 곳엔 두 남녀가 서로 껴안고 있는 그림이 있었다. 그들 위로 분홍빛 하트가 그려져있다. 나는 다시 한 번 그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의 입에선 곧바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내 어깨를 두른 그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이젠 없어.” 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본다. 그의 눈에 다시 한 번 어떠한 감정이 스친다. 그리고 팔을 들어 빼고는 비스듬히 누우며 작게 읖조린다. “이젠 없는거야.” 그는 담요를 끌어 당기더니 이내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한동안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림 아래에는 이런 글자가 적혀있다.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