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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 화이트 김루 웹소설 전체 이용가 총 3화 3화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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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플랫 화이트 한 모금으로 위로 했다. 짙은 쓴 맛과 잠시 머무르는 단 맛, 이 맛이 내가 생각하는 플랫 화이트였다' 런던의 9월은 쉽게 햇살을 내어주지 않는다. 사실 런던 자체가 빛을 머금은 도시는 아니다. 그렇게 길지는 않지만 짧지도 않았던 세월을 지나 오랜만에 방문하는 오늘 조차 낮은 높이에 있는 먹구름은 햇살을 내어주지 않았다. 케케하지 않은 어둠이 나쁘지는 않았다. 나는 빛 앞에 당당하지 않기에, 오히려 고마웠다. "커피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혹시 죄송한데 선생님 한국 분이신가요" 그녀는 '선생님'을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대답하였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모국어가 들리는 순간이 몇 번 있었지만 매 번 나를 당황시켰다. "네?" "아닙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제 인생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자 가장 미워하는 남자가 한국사람이 이거든요" "아…그렇군요, 그 사람을 대신해 죄송합니다. 저도 한국 사람 맞습니다." "왜 죄송해하세요, 잊지 못할 경험이었는걸요" "아 그렇군요, 근데 그거 아세요?" 따뜻한 플랫 화이트를 한 모금 마시며 뜸을 들였다. 사실 쓸데없는 대화를 좋아하지도 않고, 알릴 필요없는 정보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공유하는 것은 더더욱 넌센스라고 생각했지만, 오늘 이 순간 이 곳 세인트 제임스 파크에 온 연유를 되돌아 보자면 못할 것도 없었다. "저도 당신이랑 같아요" "무슨 뜻이죠?" 그녀는 손님이 없는 카페에서 세상 시간 다 가진 사람처럼 여유가 있으니, 천천히 말해보라는듯 턱을 괴고 경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저도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자 가장 미워하는 여자가 한국 사람이거든요" 어느새 그곳에 다다랐다. 경계선이라고 하기엔 부끄러울만큼 낮은 울타리와 하늘의 케케함을 가득 담고 있는 호숫가, 언제나 물 위를 떠다니는 오리, 백조들이 반겨주는 그 곳 앞에 있는 벤치, 손을 잡거나 가까워질 필요 없이 행복을 속삭이던 그 곳에 밝은 갈색 머리를 한 여성의 실루엣이 보였다. 굳이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나는 직감할 수 있다. 바람을 타고오는 채취만으로도 알 수 있다. 심장 박동이 빨라질 수 록 그곳, 그녀에게 가까워졌다.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다시는 오지 않기로 마음 먹었던 이 곳에 돌아왔다.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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