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읽었던 소설 속 악역으로 빙의했다. 아직 죽을 때가 안 된 남주의 목숨을 억지로 앗아가는 ‘사신’으로. 이대로 가면 훗날 사신이 된 남주에게 복수당해 고통받을 예정이다. 이 더러운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데, 그런 식의 결말은 사양이었다. 그래서 일단 어린 남자주인공부터 살렸다. “건드리지 마. 얘는 내 거야.” 내가 너를 구해줄게. 대신 미래에는 네가 날 구해줘. * * * 그렇게 나는 명령을 어긴 죄로 지하 감옥에 갇혔다. 10년 뒤, 마지막 기회라는 명령을 듣고 중간계로 향했는데……. “사신은 죽을 위기에만 보인다고 하니까요.” 기껏 살려놓은 애가 전쟁터를 제 집 드나들 듯하는 전쟁 영웅이 되어 있었다. 오직 나를 다시 볼지 모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를 마음대로 다뤄도 좋아요, 로지나.” 푸른 눈동자가 뭐라 정의할 수 없는 감정으로 일렁였다. 짓씹듯이 대꾸한 그가 부드럽게 눈을 휘며 속삭였다. “예전에 당신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 “저는 당신 것이라고.” 아주 유혹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