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이가준을 위해 몸과 영혼을 바쳐 살아온 세월이 길어 나는 습관처럼 그를 위해 목숨까지 내주었다. “내다 버려 이 물건.” 꺼져 가는 의식, 마지막 들려온 황제의 음성은 나의 인생 전부를 압축해 놓은 듯했다. 내다 버린 듯이 살았던 나의 삶. 덕분에 끝은 개죽음이었다. “위목화!” 멀리서 진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이름을 부르는 애절한 목소리가 마지막으로 담고 가기에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신 남을 위해 나를 잃지 않으리라. 내 삶이 비참했던 만큼 이가준의 인생도 똑같이 비참하게 만들어 주리라. 등 뒤에 박힌 화살촉의 감각이 여전히 선명한데 눈을 떠 보니 나는 무엇도 두렵지 않았던 꿈 많은 열다섯 살 소녀로 돌아가 있었다. 열아홉의 진왕이 나를 향해 걸어올수록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서른아홉의 그가 사라져 간다. 적불등천의 황자. 주나라의 적장자이자 전생에서 나로 인해 황제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불운의 황자. 진왕 이제준. 흐렸던 계획이 조금은 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나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삼 황자 이가준에겐 처절한 복수를. 나의 작은 기둥이었던 일 황자 이제준에겐 더없는 행복을 주기로. 현생의 나는 거기에 모든 힘을 쏟기로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