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살 무렵, 펄펄 끓는 열에 억지로 눈을 꾹 감은 뒤, 나는 아주 긴 꿈을 꾸었다. 그것은 나의 전생, 대한민국에서 나의 삶이었다. 몸이 아파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가 현실을 마주하기 싫은 마음에 몇 번이고 읽어내려갔던 소설 [타락한 사제님은 성녀에게 집착한다]. 여느때와 같이 책을 읽던 나는 순간 밀려오는 졸음에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나의 집, 나의 저택. 그제야 알았다. 현실이라고 믿었던 이곳이, 사실 내가 지겹도록 읽었던 그 유치한 소설 속이었다는 것을. . . . 음흉하고 더러운 속내를 숨기고 있는 저 남주인공이랑 엮여봤자 좋을 건 없어. 엑스트라는 그냥 엑스트라처럼 살아야지. 그런데... . . . "처음 봤을 때 부터 느꼈지만, 재미있는 여자야. 옆에 두고 괴롭히고 싶을 정도로." 그 음흉한 남주인공이 엑스트라인 나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런 건 소설에 없는 내용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