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오베르토 드 아르비나. 당신은 이제 끝이야."] 아니, 더 악랄하게. ["당신을 사랑한 적 없어요. 황태자비 자리가 탐났을 뿐이지."] 사랑하는 사람의 배신보다 악랄한 건 없지. ["황태자 저하.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황국과 더불어 르웬도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아끼던 수하의 배신까지 더해지면. "이 정도면 막장 오브 막장인거지." 웹소설 지망생이자 현생 은행원 김혜진. 웹소설 작가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접으려 절필과 동시에 자신의 소설 속 남자주인공을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죽이려 한다. "미안합니다. 지오베르토. 우리, 안전이별 합시다." 그리고, 아직 꺼지지 않은 모니터 불빛. 구형이지만 아직 쓸만하다고 자부하는 노트북이 지지직-이상한 소리를 내며 깜빡이기 시작한 건 혜진이 잠들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처음에는 모니터 불빛이 한참을 꺼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며 지지직 거렸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내 팟-소리와 함께 노트북 불빛이 완전히 꺼졌다. 그리고 천장 위에 생긴 작은 까만 점. 까만 점은 꿀렁 꿀렁 점점 몸집을 불려갔다. 처음에는 새끼 손톱만했던 것이 주먹만해지고, 이내 사람 하나는 거뜬히 들어갈 정도의 까만 점으로 커졌다. 까만 점은 꿀렁거리기만 할 뿐, 너무나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까만 점이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더니 쿵-소리와 함께 사람을 뱉어냈다. 그리고 감쪽같이 사라졌다. 원래의 하얀 천장 그대로였다. 까만 점이 뱉어낸 '사람'은 떨어질 때 충격 때문인지 아무 미동이 없었다. 작게 꿈틀거리는 그의 오른손만이 의식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의 오른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는 피는 피에 적셔져 정확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빛나는 황금과 녹색 자수정으로 세공된 반지. 아르비나 황제의 표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