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한 번 쯤은 상상해봤을 법한 이야기. 자주 가던 카페에서, 자주 가던 식당에서, 우연히. 정말 우연히. 헤어졌던 전 연인과 재회하게 된다면? 아는 척을 해야 될까, 모르는 척을 해야 될까. 그리고 그때의 나의 상태는 어떨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는 최고의 상태로, 상대방은 최악의 상태로. 내 머릿속에서만 하는 상상이니깐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런데 만약에 상상 아닌 현실이 된다면? 게다가 막연하게 상상하던 그 모습과 딱 반대인 상태로 재회하게 된다면? 아주 딱 죽고 싶겠지. 뭐.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냐고? 뭐긴, 내가 아주 딱 죽고 싶다는 말이지. 유난히 재수가 좋았던 그날, 유난히 재수 없는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CCTV가 넘쳐나는 21세기에 도둑이, 그것도 다른 도둑도 아니고 속옷 도둑이라니. 게다가 와중에 출동한 경찰이 왜, 하필이면, 1년 전 헤어졌던 X. 도진일까.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제 모습이 초라해 보이기 짝이 없었다. 분명히 1년 전의 나는 이렇게 초라하지 않았는데. 자신과 달리 깔끔하고 빛이 나는 도진의 모습에 괜히 쭈그러드는 유리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도진의 태도가 이상했다. 헤어진 지 무려 1년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연인처럼 아무렇지 않게 연락을 해왔다. 그 덕분에 유리의 머릿속은 요란하기 짝이 없었다. 이런 도진의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어지러운 와중에 자신의 집 주인이자 단골 카페 사장인 수호의 은근한 플러팅으로 인해 유리의 어지러움은 현재 진행 중이다. 지금 유리가 처한 상황에 사랑은 사치였다. 유리는 도진과 수호를 붙잡고 대놓고 묻고 싶었다. 대체 둘 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