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말고 더 센 건 없어요?” 순간 그는 검게 반짝이는 동공으로 하연의 가면 속 욕정을 읽으려 들었다. 누구에게도 허락한 적 없는 적나라한 내면이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 극악의 절정에 이른 후 하연의 요구를 잊은 그가 규칙을 깨고 말았다. “우리 사귈까?” “안 해요. 그런 거.” “결혼은?” “아쉽지만 우리의 밤은 여기서 끝이에요.” 그와의 하룻밤이 그렇게 저물어갔다. 규칙이 완벽하게 지켜지던 순간. 하연의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서 비서 아직 퇴사 상태 아니야.]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좋아서도, 싫어서가 아닌 이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미워서……. 다음 날, 하연은 제가 정한 운명을 거스르고 밤을 보낸 남자의 비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