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이 관계는 처음부터 꼬인 거였다. 수연이 이경그룹의 삼남, 그것도 권력욕 따위 전혀 없는 인혁의 ‘딸’이라는 것은 세간의 눈에는 그저 축복이었다. 우습게도 제 할아버지의 권력욕을 닮은 수연에게는 그 자리가 감옥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수연은 집안의 보탬 따위로 소모되기 위해, 인형처럼 팔려가는 건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날고 기는 사촌들을 넘어서야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선을. 아니, 남자를 이용하기로 했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이경그룹의 위에 올라서기 위해. 그러나. “차수연.” 그녀 인생 최초의 좌절감을 안겼던. 그녀 인생 최초의 굴욕감을 주었던. PA전자 외손주, 윤재하가 나타난 그 순간 모든 것이 조금씩 틀어지게 된다. “결혼은.” 수연이 이용하고자 한 윤재하라는 남자는. “아직 이른데.” 언제나 그녀의 생각을 넘어서는 사람이었고. “약혼을 전제로 한, 연애는 어때.” 그렇게 동상이몽의 불완전한 계약 연애까지 시작시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