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답받지 못할 연정이라도 상관없었다. 고작 하룻밤의 소모적인 관계로라도 옆에 남을 수 있다면. 하지만 더 이상 그의 곁에 설 수 없는 이유가 생겨 버렸다. “대표님, 우리 이제 그만 만나요.” 어머니를 죽게 만든 여자의 딸일 뿐이었다. 눈 닿는 곳에 두고, 망가져 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장난감. 그런데 왜 자꾸 거스러미처럼 그녀가 신경 쓰이는 거지? “장난감은 제 발로 움직이지 않아.” 오늘 밤, 너를. 내가 너를 가진다면, 난 과연 모든 걸 잊을 수 있을까? 내가 너를 처절하게 망가뜨린다면, 여자로 보이는 너를 가지고 버린다면. 네 어머니가 지은 죄를 네가 치른다면. -본문 중에서- “도망가고 싶어?” 지혁이 물었다. 무겁게 탁해진 목소리였다. 입술 주변은 타액으로 붉게 번들거려 외설적이라, 설아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그의 입술에 멈췄다. 후회하진 않았지만, 무서웠다. 그와 나눈 키스가 무섭도록 황홀했다. 입 안으로 침범해 들어오는 그의 혀가 미칠 정도로 아찔해 설아는 이 모든 게 무서워졌다. 지혁이 대답 없는 설아를 보며 입매를 비틀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조금은 빈정대고 삐딱한 그 미소가 욕망으로 탁해진 시선과 잘 어울렸다. “이제 늦었어. 나 너 못 보내.” 지혁이 얼굴의 각도를 비스듬히 기울이며 그녀의 허리를 감아 자신의 몸 쪽으로 잡아당겼다. 그리곤 벌어진 그 입술 틈을 파고들며 자신의 혀를 박아 밀어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