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나는 사랑이란 열병을 앓았다. “우리는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거지. 일종의 계약 같은 거라고 생각해. 다만 계약의 목적이 결혼일 뿐인 거고.” “계약 결혼 같은 걸 말하는 건가요?” “맞아.” 그래서 이 결혼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것 같은 미친 짓인 걸 알면서도. 기꺼이 몸을 던졌다. “가장 중요한 계약 조건은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7년간의 짝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러다 결혼 후 세 번째 돌아온 생일날.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시고 비틀거리며 거리를 걷다가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했다. 그제야 내 선택에 대한 후회가 밀려왔고. 고백을 끝으로 마침내 외사랑에 종지부를 찍기로 한다. *** 얼른 여기를 아니 그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에 급히 몸을 움직이려던 순간.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이 손목 놓고 나랑 얘기 좀 해.” “아까 말했잖아. 가둬 버렸어야 했다고.” “뭐?” 그는 나를 돌아보지 않은 채 끌고 가기 시작했다. “차라리 잘된 걸지도 몰라. 이렇게 하면 네게 껄떡대는 놈들 때문에 미쳐 버릴 일도 없고. 내가 보고 싶을 땐 언제나 널 볼 수 있고, 언제까지나 내 곁에 두고 나만 널 볼 수 있는 거잖아.” 나를 비스듬히 내려다보고 있는 그 눈동자가 광기로 번뜩였다. 10년간의 짝사랑을 끝내야 하는데. 후회로 얼룩진 그의 집착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