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필에게‘ 사랑’은 그저 개념일 뿐이었다. 서른한 해를 살아오며 여자라는 구체적인 대상에 설레거나 흔들린 적 없었다. 그런데 은기의 웃음을 보는 순간 재필의 가슴이 철렁했다. “은기 씨도 친구 있어요?” “친구도 없게 생겼나 보네요. 어떡하죠? 애석하게도 있어요.” 단순한 호기심인 줄 알았던 감정이 즐거움으로 변해 가고, “나는 모르는 은기 씨를 우해강이 알고 있다는 게 너무 기분 나빠.” 어느 순간부터는 그녀가 자신만을 봐 줬으면 하고 바라게 됐다. “은기 씨하고 정식으로 만나고 싶어요.” “그럴 수는 없어요.” 재필의 가슴으로 순수한 통증이 찾아왔다. “이유는요?” “서 선생님은 양달에 사는 사람이에요. 반면에 전 응달에 살고 있죠.” 태어나 처음으로 무력감을 느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래?’ ‘너를 걸어, 서재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