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에 부모를 잃은 어린 남매에게 세상은 지독하게 차갑고 소름 끼치게 아픈 곳이었다. 네 살배기 동생을 지키기에도 벅찬 어린 나이. 악의 가득한 폭력 앞에 모든 것을 놓아 버리기 전, 은성에게 내밀어진 손 하나. 스무 살, 누구를 책임지기엔 어리기만 한 나이. 한서는 입술을 짓깨물었다. 지켜야 할 사람을 지키지 못하는 아픔 때문에. “데리러 갈게. 꼭, 늦지 않게 갈 테니까…… 거기 있어. 기다려.” 다시 만나기를, 함께할 수 있기를 그토록 바라면서도 처음엔 몰랐다. 서로를 향할 때마다 왜 그리 심장이 뛰었는지. 그리고 운명이 만들어 낸 재회 앞에 상처 입고 무너져 가던 소녀는 여자가 되었다. 지킬 수 없어 아파했던 남자는 어른이 되었다. 다시 내밀어진 손을 놓치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