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이 연하가 앉은 의자 옆에 놓인 두꺼운 책을 보며 물었다. “저 소품은 여자 말고 학생 취급해달라는 어필입니까.” 하드커버에 <소통과 언론>이라고 제목이 적힌 책은 그녀의 전공 서적이었다. 강헌에 지적에 잠시 당황한 연하가 전공 서적을 가방 아래로 밀어 넣었다. “죄송해요. 오후에 바로 수업이 있어서요. 시간이 없었어요.” “사과받자고 한 소리는 아닙니다.” “.....” 그녀가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길고 가는 손가락에 무심코 시선이 쏠린 강헌이 노골적으로 그녀를 훑었다. 이연하는 떨고 있었다. 손가락을 덜덜 떨며 겨우 한 모금의 커피로 목을 축이고, 겁먹은 눈동자는 눈앞에 앉은 남자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누가 잡아먹나. 목에 사슬 걸어 끌려 나온 작은 짐승처럼 덜덜 떨긴. 시선을 거둔 강헌이 커피 잔을 매만졌다. 명분이 확실한 결혼이라고 해도 도살장의 주인이 되는 거라면 사절이다. “이연하 씨는 이 결혼, 하고 싶어요?” “......” “안 하고 싶으면 제가 양가 부모님께는 잘 말씀.....” “하고 싶어요.” “하고, 싶어?” 반문 끝에 헛웃음이 살짝 걸린 건 너무도 의외인 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