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권력의 가장 오래된 천적이다. 모든 권력자는 기록자를 통제하고, 모든 기록자는 진실을 왜곡한다. 그러나 기어코 기억된 우리의 서사는 권력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숨을 멎은 진실을 되살린다. 설이현은 끊임없이 태풍의 눈 속에서 진실을 더듬어 헤매었다. 어지럽게 흩어진 서사의 조각을 이어붙이며 퍼즐을 조합했다. 흥신소를 인쇄소로 탈바꿈하여 변장한 일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머니의 감시망을 피해서 사각지대를 꾸리기에 적합했으니까. 그런데 새롭게 얽히는 인연들이 하나같이 수상하게 상냥하다. “누나 옆에 있던 시간 중에 거짓이었던 순간은 없었어.” 후원을 받으며 불세출의 천재 화가로 저명한 대학 후배. “너를 지키는 일은 내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마지막 증거였어. 그게 사랑이라면 난 기꺼이 망가질 거야.” 집안의 계약으로 맺어진 법무계 소속의 약혼자.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서 미궁의 사건을 파헤치며 진실을 좇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