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천 년 전부터 사이젠 왕국에서는 수인이라는 동화가 유행하였고, 실제로 수인이 존재해 동화의 신빙성을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인은 제 모습을 감추고 그 어떤 곳에서도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고 했다. "둘 다 개였네." 제 모습을 감춰야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그들이 네이제른 앞에서 교차하여 모습을 바꿨다. 회색빛의 머리칼과 황금빛의 눈동자를 가진 사내는 늑대에서 사람으로. 붉은 머리칼과 녹음의 색을 품은 눈동자가를 가진 남자는 사람에서 여우로. 지금부터 네이제른이 아니면 안 되는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 * "왜 자꾸 붙으시는 거죠." 추위도 어느 정도 물러간 늦봄에 네이제른은 저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카스텔에게 물었다. "너한테서 좋은 냄새가 나." 냄새, 그것에 어젯밤 씻지 못했던 것이 떠올라 괜히 머쓱해지던 때. "불편하시다면 씻고 오겠습니다." "씻고 와서 뭐하게?" 능글거리는 눈썹과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네이제른은 덤덤하게 입을 떼었다. "왜 자꾸 저에게 그러시는 거죠." "질척이면서 치근덕대는 거?" 단번에 맞춘 네이제른의 속 뜻은 그녀를 다물게 만들었다. "그야." 그때였다. "출정을 명 받아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그만 일어나시죠." 가엔 테오도르가 두 사람 앞에 나타나 당차게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마물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 카스텔의 눈앞에서 네이제른을 응시했다. "전혀 포기가 안 돼서 이렇게 직접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