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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1학년 1학기 봄 (1) - 예닮의 능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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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른쪽 상단에서 줄간격과 폰트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줄 간격 3 이상이 가독성이 좋습니다 :) 감사합니다. 0. 프롤로그    땅 위에서 고래를 본 적 있는가. 우르릉.천둥과 함께 예보 없던 폭우가 내렸다. 하염없이 쏟아지는 비바람에 최초로 전국 휴교령이 내려졌다. 그 사실을 몰랐던 소녀는 우산으로도 막아지지 않는 거센 비를 맞으며 걸음을 뗐다. 소녀는 자꾸만 눈을 깜빡였다.빗줄기에 시야가 가려져 자꾸만 앞이 뿌예졌다. 그때였다. 아주 커다랗고 파아란 생물체가 안개 속에서 지느러미를 살랑였다.나무보다도 훌쩍 큰 생명체에 소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비볐다. “……고래다.” 우산이 툭하고 떨어졌다. 쏴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온몸으로 비를 맞으며 소녀는 고래를 바라봤다.길고 커다란 지느러미, 반질거리는 푸른 몸, 심연이 느껴지는 깊고 어두운 눈동자. 고래의 눈과 소녀의 눈이 오랜 시간 부딪혔다.고래는 찬찬히 소녀를 본 후 느리게 뒤를 돌아 천천히 헤엄쳤다. 땅 위에서의 헤엄. 신발 안까지 순식간에 빗물이 차올랐다.하지만 소녀는 우산을 줍지도 못하고, 고래가 저 끝 어딘가로 사라질 때까지 하염없이 그 자리를 머물렀다. 축축해진 옷을 짜며 걸음을 재촉한 소녀는 교문에 붙은 너덜너덜한 휴교령 공고를 읽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텔레비전을 키자 뉴스 앵커가 긴급 속보 두 건을 발표했다.예보에 없었던 초대형 태풍과, [두 번째 속보입니다. 오늘 오전, 인천 앞바다에서 대왕 고래의 사체가 떠올랐습니다. 현재 서른 명 이상의 구조대원이 고래의 사체를…….] 소녀와 마주쳤던 고래를. 그 이후, 소녀는 사람과 신, 영물을 비롯한 모든 영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무당들은 ‘귀안(鬼眼)’이라 부르고, 사람들은 ‘저주’라 부르는 능력.소녀 역시 저주라 생각했다. 무당 스쿨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제1장.      1학년 1학기 봄 (1) - 예닮의 능력  “또 왜.”“이 할비가 사고 쳐서 전화 했겠냐, 손녀 얼굴도 보자 할 겸 겸사겸사 뭐……” 예닮이 눈썹을 팍 찌푸렸다.그 옆으로 그물 침대에 대롱대롱 매달린 하랑이 책을 덮고 눈을 반짝였다. 탁, 책 덮는 소리가 나자마자 예닮이 볼륨을 줄였다. “치.” 하랑이 입술을 삐죽이더니 다시 책을 들었다.표지에는「동양귀신개론」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예, 예닮아?”“그런 일 아니면 한 달 뒤에 가도 되는 거지?”“한 달은 쪼꼼 늦은 것 같은데, 허허…….” 할아버지의 어색한 웃음이 수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그럼 그렇지.’ 예닮이 한숨을 쉬고 지끈거리는 이마를 잡았다.할아버지는 도대체 언제 정신을 차리려는 걸까.보나마나 또 살이 꼈다고 굿 값으로만 몇 백을 받았겠지. “미안하다……. 잠깐만 와 가지고, 손님한테 뭐가 꼈는지 나한테만 조금 말을 해주면은……” 예닮에게는 할아버지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그 한명 뿐이라는 할아버지가 큰 도움은 고사하고 민폐만 끼치는 사람이었다. 직업은, 사이비 무당. 특징, 용하다고 소문남. 예닮은 입학 후 할아버지와 연을 끊을까 하는 생각을 하루라도 거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끝끝내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리라는 것 또한 잘 알았다. 핏줄이라곤 하나뿐이었으니까. 아버지란 사람은 인천 앞바다에서 대왕고래가 떠올랐던 그 날, 예닮을 할아버지에게 맡긴 후 자취를 감췄다. 무려 8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알았어. 오늘 저녁에 잠깐 갈게.”“고맙다! 아고, 우리 손녀. 착하다. 그럼 곧 보마!” 뚝. 금세 전화가 끊겼다.하랑이 예닮의 침대 아래에서 슬금슬금 기어 나왔다. 예닮이 하랑을 째렸다. “체력도 많다. 이런데 분신술을 써?” 그물 침대위에 누워있던 진짜 하랑이 머리를 긁적였다. “헤헤, 악령을 처치할 힘은 없으니까? 그건 그렇고 할아버지가 또 사고치신거야?” 퍽. 예닮이 바닥에 찰싹 붙은 하랑을 발로 갈겼다. 하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악! 아프다고!” 그물 위에서 하랑이 팔을 감싼 채 비명을 질렀다. “하여튼 시집은 갈 수 있나 몰라.” “이젠 본체를 차줄까?” “……” 투덜대던 하랑이 입을 꼭 다물었다.  “그래두 너무 늦게까지는 오지 마. 자정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있으니깐.” 예닮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시각 4시. 미아리고개까지 넉넉잡아 3시간 걸린다고 하면 늦을 일은 없었다. 그런데 밤 12시에 시작하는 오티라니, 하나부터 열까지 특이한 학교였다. “근데 너 없음 나 심심해서 오-또-케.” 하랑이 맞을까 조마조마하며 통하지도 않을 애교를 부렸다. 예닮이 책을 꺼내 그물 위로 휙 던졌다. 『애교만점 남편, 섹시한 귀신이 되어버렸다? - 랑지 장편 로맨스 판타지 소설』 “에이, 나 이거 진작 봤다구.”“그럼 다시 줘.” 하랑이 책을 던지려는 순간 오른쪽에 작게 적힌 문구를 발견했다. 「한정판 19금 수록」 “안 봤던 거네? 땡큐!” 하랑이 큼큼 목을 가다듬고 조심스럽게 등 뒤로 숨겼다. 예닮이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열었다. 도착지는「현봉 법사」로. 출발지는 현 위치를 아무리 클릭해도 잡히지 않았다. 같은 메시지만 줄기차게 뜰 뿐이었다. [현 위치를 알 수 없습니다.] “아.” 예닮은 입학식 날 들었던 훈화를 떠올렸다. 일반 중학교와는 달랐던 말쑥하고 젊은 교장의 얼굴도. “다들 길 찾느라 힘드셨죠? 문자로 보냈던 지도 그림 외에는 방법이 없어서 헤맸을 겁니다. 위치가 안 잡히게 설정해 뒀거든요.” 예닮은 오류 창을 끄고 직접 입력 버튼을 눌렀다.출발지 : 속초고속버스터미널  ***  “아고, 우리 손세주. 먼 길 오느라 힘들었지?” 손세주.손녀와 구세주를 합친 말로, 현봉이 사고를 칠 때마다 예닮을 부르는 애칭이었다. “……이게 다 뭐야?” 백발을 정수리까지 질끈 묶은 현봉이 몸을 일으켰다. 불상 세 개와 양초 다섯 자루 정도가 바닥을 굴러다녔다. “조금 전에 그 여자가 다녀가서……. 이것보다도 인터넷에 올리면 어뜩하냐. 다 사이비다. 거짓부렁이다, 손가락 좀만 움직이면 나는 그냥…….” 현봉의 머리가 노래졌다. 맘 카페에 오르내리는 자신의 명성을 떠올렸다.수십 년을 들키지 않고 쌓아왔는데! “예닮아, 이번만 딱 할비 좀 도와도.” “할아버지 이제 이 일 그만한다고 약속하면.” “……으응.” 현봉이 예닮의 눈을 피하며 어물댔다. “아, 진짜! 나 다시 간다!” “알았어! 알았어! 안 한다고 약속하마.” 현봉이 약지를 들어 약속-이라는 모양을 취했다. 그리고 지하 방으로 통하는 붉은 문을 가리켰다. “잠깐 저기다 포박시켜뒀는데……. 알잖니. 이 할비 두 시간도 못 버티게 하는 거. 저 놈, 금세 또 나와서 아들놈한테 쪼르르 달려갈 게 분명하지.” 현봉이 100프로 사이비 무당은 아니었다. 점집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 내에서도 현봉의 영험함을 알리는 소문이 일파만파 퍼졌으니까. 헛소문은 아니었다. 다만, 현봉은 귀안이 없어 영혼을 구별하지 못했으며, 선령(善靈)을 악령(惡靈)으로 착각하고 없애는 경우도 허다했다.잡령들만 간신히 소멸시켰고, 그마저도 굿을 끝낸 뒷면 3일은 앓아누웠으니 「현봉법사」가 3일 단위, 100프로 예약제인 이유는 여기 있었다. 예닮이 문고리를 잡고 뒤를 돌아 현봉을 봤다. “아들놈이라는 애 증상은 어떤데?” “아참, 이놈의 정신머리. 사람을 피 말려 죽이는 놈이야.” “죽였다고?” 예닮이 불안한 눈빛으로 문고리에 가져갔던 손을 다시 내려놨다. 현봉이 예닮의 낯빛을 보고 깜짝 놀라 과장되게 팔을 흔들었다. “아니, 아니! 비유다, 비유. 아들놈이 삼수를 하고 있는 모양이더라고. 열아홉부터 이상해진 모양이야.” 뭐가 있긴 한 것 같은데……. 현봉이 읊조리며 머쓱하게 웃음 지었다.예닮이 문고리를 잡았다. 만약 문고리가 뜨겁다면 사람에게도 해를 끼치는 지독한 악령. 그렇다면 예닮이 가진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 예닮이 짧게 비명을 뱉었다.갑작스러운 비명에 현봉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예닮을 바라봤다. 예닮은 괜찮다는 표정으로 현봉을 향해 두어 번 손을 내저었다. 문고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됐어. 못된 앤 아냐.” 예닮이 문고리를 돌렸다.끼이이이익. 낡은 쇠들이 부딪치며 듣기 싫은 경첩 소리가 울렸다. 터벅터벅. 계단을 밟을수록 냉기가 차츰 더 심해졌다. 계단을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영혼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흐어어엄. 피곤하오. 피곤하단 말이오.” 예닮이 힐끔, 방을 살폈다. 저고리에 마고자와 조끼, 갓까지 풀세트로 차려입은 선비가 있었다.  한 손에는 담배를, 다른 손에는 펜을 들어 무언가를 휘갈겼다. 뻐끔뻐끔.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가 금세 흩날렸다. 선비의 옆으로는 부러진 펜들이 꽉꽉 찬 보따리가 보였다.  예닮이 천천히 영혼 앞으로 다가갔다. “어이, 아저씨.” 선비는 들은 체 않고 젖은 면을 꺼내 허공에 쭉 짠 후 이마에 놓았다.면이 선비의 얼굴에 닿으며 김을 내뿜었다. “선비님?” “왜 부르시오.” 아저씨라 부를 때는 등을 돌려 한창 바쁜 척을 하던 선비가 ‘선비님’이라는 호칭에 뒤를 돌았다. 하여튼 옛날 사람들은 호칭에 강박관념이라도 있는 게 분명해. “왜 그렇게 남학생, 아니 남학우를 따라다니는 겁니까?” 선비가 아아,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어차피 이 몸, 반각만 지나면 이 누추한 방에서 다시 나올 수 있단 거 알고 있소만.” 예닮이 뜨끔했다. 할아버지가 도대체 몇 번이나 가둔 거야. 시간까지 재고 있는 걸 보면 최소 세 번 이상이다. “여기 다시 오고 싶진 않으실 것 아닙니까?” 선비가 검지로 코끝을 훔쳤다. “그 벗이 안타까워 보였단 말이오.” 예닮이 고개를 갸웃했다.쯔쯧. 저렇게 공감을 하지 못해서야. 선비가 혀를 찼다. “그 벗도 장원급제를 바라는 모양이더군. 눈빛, 마음가짐, 행동, 씀씀이까지 과거의 나와 아주 똑 닮았소.” 예닮은 피곤해서 선비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 갑자기 마음속으로 구구단을 외우기 시작했다. ‘12 곱하기 12는 144…….’ “내 말 듣고 있소?” 예닮이 눈꼬리를 억지로 접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아, 늙으면 눈치도 빨라지는 게 분명하다. “하여, 내 학업에 힘썼던 능력으로 조금만 돕고 휴식을 취하게 하고 싶었소만 머리가 터질 것 같더군. 아니, 어찌 양놈의 언어를 그리 달달 암기해야 하느냔 말이오?” 선비가 양반다리를 꼬아 고개를 마구 저었다. 예닮은 속으로 별 이상한 영혼을 다 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바라는 게 뭔데요?” “그 벗을 쉬게 하고 싶소. 물론 나도 쉴 수 있을 테지.” 초와 불상을 마구 깬 그 아줌마가 삼수하는 아들을 쉬게 할까 싶었지만 어쨌든 해결의 실마리는 보였다. “얼마나요?” “……섣달까지.” (: 12월) 예닮은 한국사시간에 배웠던 조선시대의 시간 개념을 기억해내려 애썼다. 물론 떠오르지 않았다. “석달?” “섣달.” “석달?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일러둘게요.” 보이지 않던 밧줄로 선비의 발을 꽁꽁 감쌌던 포박이 풀렸다. 선비가 방정맞게 발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이제 좀 쉴 수 있겠구만. 다시는! 여기 오게 하지 마시오. 그 이는 내 말도 못 듣고, 처지도 이해하려 하지 않고! 여하튼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내오.” 선비가 뒤를 돌아 벽을 향해 걸었다. 부러진 펜 몇 자루가 남아 있다 점점 옅어졌다. “석달…….” #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앞으로 꾸준히, 빠르게 연재하겠습니다 :)댓글과 관심작품구독은 사랑입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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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ㅡ 1학년 1학기 봄 ⑵ - 좌야림 (上) 】 2019.08.15 4.9 14 다음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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