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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의한 정략결혼으로 이뤄진 관계였다. “이혼해요, 우리…….” 행복할 거 같았던 결혼 생활은 시릴 만큼 차가웠고, 외로움의 연속이었다. 무심하고 차가운 그는 언제나 선을 긋듯 존칭만을 사용했고, 결혼 생활 내내 그녀의 몸은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더 이상의 결혼 생활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대로 이혼하고 인연을 끊으려 했건만, 예상과 달리 그가 집요하게 붙잡아왔다. “그동안 많이 편안했나 봐? 사람이 여유로우면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던데.” “김지훈 씨……?” “이제부터 부부 놀이 좀 해 볼까 해. 지금까지는 윤세영 씨가 나만 보면 눈치 보며 피하는 것 같아서 참았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진 것 같거든.” 섬뜩하면서도 의미심장한 그의 얼굴. “앞으로는 의무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같이 잠자리를 하는 쪽으로 하죠. 그게 서로한테 좋을 테니까 말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달콤한 사탕을 쥐여 주는 사람처럼 미소 짓는 그를 보며, 그녀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땐 이미 늦은 후였다. 그렇게 무미건조했던 관계는 이후 걷잡을 수 없이 변하기 시작하는데……. *** “마음을 들킨 게 억울합니까? 그런데 어쩝니까. 당신이 표정 관리를 못 해서 들킨 것을.” “…….” “너무 속상해하지는 마십시오. 당신을 생각해서 키스 정도는 해 줄 수 있으니.” “김지훈 씨.” “그러니까 당신도 이혼하겠다는 말은 그만하는 게 좋을 겁니다. 말만 잘 듣는다면 당신이 원하는 다정한 섹스는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으니까.” 지훈은 설탕 발림이 가득한 목소리로 세영의 귓가에 속삭였다. 눈가에는 작은 광기를 가득 담은 채로 속삭이는 지훈은 세영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귓가에 손을 가져가 대었다. “흣.” 흠칫하고 놀라는 세영의 입에서 여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이 상황이 비참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생각에 세영이 눈을 감자 긴 속눈썹 사이로 참았던 눈물이 빠르게 스며들었다. 그 모습에 지훈은 미간을 구겼다가 세영의 귓불을 문질거렸다. “제가 이런 취향인 줄은 몰랐습니다.” 지훈은 맹수 앞의 초식동물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는 세영의 모습에 묘한 쾌감을 느꼈다. 이혼하겠다며 주도권을 가지고 있던 세영을 정복했다는 그런 느낌이 들어서였다. “참으로 약한 사람이로군요. 그동안 얼마나 사랑을 받고 쉽게 원하는 것을 가졌는지 알 것 같습니다.” 지훈은 입술을 삐뚜름히 휘며 귓불을 따라 턱선을 손끝으로 천천히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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